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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썰닷컴 ( www.4ssul.com )

과거, 해외에서 유학할 무렵 이야기다.

 

나라 이름을 밝히면 신원이 드러날까 두려워 비밀로 해둘 생각이지만, 유럽의 자그마한 나라인 것만 밝혀두지.

 

1년간의 유학생활 중, 나는 대학 근처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대학 자체가 완전 깡촌에 있는 낡아빠진 학교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럽은 거리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건축 관련 법률이 엄격한 듯 했다.

 

대학 건물 역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서 멋대로 리모델링이나 개축이 불가능했던 거겠지.

 

 

 

그 탓에 벽지도 너덜너덜하고, 바닥은 나무가 삐걱대는데다 냉난방도 안됐다.

 

일본이라면 지진 한방에 무너질 건물이지.

 

대학교가 그 정도니, 기숙사는 오죽하겠나.

 

 

 

학교 건물이랑 막상막하일 정도로 낡아빠진 건물이었다.

 

물도 잘 안 나오고 나무 틈새로 바람은 숭숭 들어오지, 쥐까지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끔찍한 곳이었다.

 

당연히 냉난방도 안 되고.

 

 

 

그나마 공유 룸에는 난로가 있었기에 겨울에는 거기 다같이 모여앉아 겨우 견뎠다.

 

기숙사 주변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려면 정문을 거쳐야만 했다.

 

그 문 옆에는 작은 조립식 오두막이 있고, 거기 문지기 할아버지가 늘 머무르고 있었다.

 

 

 

이 문지기는 내가 기숙사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온 사람이었다.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올법한 심술궂기 짝이 없는 할아범이었다.

 

기숙사에는 통금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까지는 무조건 기숙사에 돌아가야만 했다.

 

 

 

늦으면 입구에 서 있는 문지기에게 잡히게 된다.

 

문지기는 통금을 어긴 학생의 이름을 적어뒀다 나중에 사감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학생은 불려가서 설교를 잔뜩 듣고, 반성문까지 써야만 한다.

 

 

 

이전에 일하던 문지기는 무척 오래 일한데다 학생들을 잘 이해하는 상냥한 할아버지였다.

 

나도 한 번 통금 시간에서 10분 정도 늦게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빨리 들어가렴. 나는 아무 것도 못봤단다.] 라며 윙크를 찡긋하고 보내줬던 적이 있다.

 

정말 댄디하고 잘생긴 할아버지였다.

 

 

 

맥주를 잔뜩 마셔서 그런가 배불뚝이였지만 말야.

 

하지만 새로 온 문지기는 달랐다.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음험했다.

 

 

 

고작 5분 늦은 거 가지고 한참 동안 설교를 늘어놓고, 사감한테 보고까지 올린다.

 

설교가 아무리 길어도 잘못을 했으니 할말 없이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게 또 밑도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무 연관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앉았으니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진이 빠질 수 밖에.

 

 

 

문지기는 오두막 창문으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설교를 해대니, 밖에 비가 내리던 눈이 오던 신경도 안 쓴다.

 

오히려 그런 날일수록 설교를 더 길게 늘어놓아, 그 때문에 감기가 걸린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내가 쓰던 방은 2인실로, 다른 유학생과 같이 쓰는 방이었다.

 

 

 

그 녀석이 바로 P였다.

 

P는 요구르트로 유명한 나라에서 온 녀석이었는데, 머리가 비상해서 학비랑 기숙사 비용을 다 국비로 지원받는 녀석이었다.

 

그 뿐 아니라 성격도 워낙에 좋아서, 기숙사 안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녀석이었다.

 

 

 

처음 유학을 와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못 꺼내던 나를 도와준 것도 P였다.

 

난생 처음 겪는 환경 속에서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던 건 모두 P 덕분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P가 새로 온 문지기의 소행을 참다 못해 직접 담판을 지으러 갔었다.

 

 

 

아까 전에도 말했듯, 문지기의 설교는 악천후일수록 오히려 더 길었다.

 

그런데 마침 어느 학생이 눈오는 날 그 설교에 걸려서, 오랜시간 영하의 날씨 속에 서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당연히 컨디션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원체 몸이 약한 녀석이라 이전에도 종종 잔병치레를 하던 그는, 결국 폐렴까지 병세가 악화되어 유학을 그만두고 모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그가 지각한 것 역시 병원에 다녀오느라 그랬던 것이다.

 

P는 잔뜩 화가 나 열변을 토했다.

 

 

 

[귀국해야만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건 저 문지기 때문이야! 제대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P는 제대로 된 사과와 위자료를 받아내고, 통금 관련해서도 협의를 하겠다며 달려나갔다.

 

그것 말고도 여러 이야기를 한 것 같았지만 당시 내 어학 실력으로는 저 정도 알아듣는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담판 때문에, P는 유학을 그만둬야만 했다.

 

갑작스레 모국에서 P에게 지급되던 국비장학금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원인은 그 문지기였다.

 

 

 

직접 항의하러 온 P를 못마땅하게 여겨, 불량 학생이라며 대학 측에 보고를 했던 것이다.

 

기숙사에서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거짓 보고를 사감에게 계속 올린 끝에, 그게 P의 모국에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국비유학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나라를 대표해, 그 나라의 세금으로 공부하는 입장이다.

 

 

 

조금이라도 나쁜 행실을 보이면, 바로 나라 전체의 이미지에 해가 된다며 장학금이 끊겨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언제나 온화하던 P가 미쳐 날뛰는 걸 보았다.

 

평생 우등생으로 정의롭게 살아온던 그가, 말도 안되는 음해 때문에 악인으로 낙인찍혔으니 그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가 갔을까.

 

 

 

그의 분노는 정말 엄청났다.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니, 혹시 이미 그때 P는 미쳐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장학금 중단 통보를 받자, P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다만 이번에는 직접 담판을 짓는게 아니라, "복수" 를 하려는 것이었다.

 

워낙에 덕망이 있던 P의 제안이었고, 다들 문지기에 대해 울분이 쌓여 있었기에 기숙사에 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P를 돕기로 했다.

 

 

 

물론 나도.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들은 거라곤 [내일 저녁, 기숙사 지하실로 좀 와줘.] 라는 말 뿐이었지만.

 

다음날, 나는 P의 말을 따라 기숙사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은 작은 홀이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불은 다 끄고 벽 구석에 있는 촛대에 양초가 불타고 있을 뿐이었다.

 

홀 안에는 이미 상당수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검은 로브 같은 걸 둘러쓰고, 검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지하니까 당연히 밖에서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슴푸레한 방에 가득한 검은 인간들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져 나는 조금 기죽었다.

 

검은 로브를 쓴 사람 중 한명이 내게 다가와, 같은 로브와 마스크를 건네줬다.

 

 

 

자세히 보니 P였다.

 

[그걸 쓰고 기다리고 있으면 돼.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뭐라고 외치면 그걸 따라서 외쳐줘.]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워서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홀에 모인 건 기숙사생 중 절반 정도였다.

 

모두가 사라지면 문지기가 이상하게 여길테니, 나머지 녀석들은 평소처럼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듯 했다.

 

나도 그쪽 역할을 맡았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한동안 기다리고 있자,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몹시 천천히,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를 않으려는 듯.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주변을 보니, P랑 다른 한 명이 계단 바로 옆벽에 붙어 낌새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대로 손을 뻗어 내려온 사람을 잡았다.

 

문지기였다.

 

 

 

문지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파악이 안 된 듯,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홀 한가운데까지 끌려왔다.

 

나는 그제야 홀 한가운데 도끼가 놓여져 있는 게 보였다.

 

평소에는 난로에 넣을 땔감 팰 때 쓰는 놈이었다.

 

 

 

그걸 보자 문지기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들 문지기를 죽이려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방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싶었지만, 주변에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가득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나 역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내심 겁에 질려 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P가 마스크를 벗고 문지기 앞에 서서 말했다.

 

[도둑이 아니라서 다행이겠군.]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패거리 중 한명이 [지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요. 도둑이 든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해 문지기를 꾀어냈었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올 때 그가 잔뜩 경계하고 있던 건 그 때문이었겠지.

 

P는 문지기를 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겁에 질려 있던 내 귀에는 잘 들리지가 않았다.

 

간신히 [네놈의 악랄한 정신에 벌을!] 이라던가, [청년의 앞날을 끊은 죄값을 치뤄라!] 라는 둥 거창한 소리를 해대고 있었던 건 기억난다.

 

 

 

마지막에 외친 [참수로 단죄하리라!] 라는 말만큼은 왠지 제대로 들려왔다.

 

P는 문지기의 눈을 가는 천으로 가리고, 어깨를 눌러 땅에 무릎꿇렸다.

 

문지기는 비지땀을 줄줄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새하얬다.

 

그 순간, P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도끼가 아니라.

 

 

 

그리고는 손수건을 삼각으로 접어, 양끝을 잡고 문지기의 목에 살그머니 갖다댔다.

 

문지기는 무릎꿇은 채 뛰어올랐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P는 문지기를 죽일 작정이 아니었다는 걸.

 

눈을 가린 문지기는 완전히 손수건을 도끼라고 믿고 있었다.

 

그게 목에 다가오면 진짜로 목이 잘려나간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P 옆에서 다른 녀석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문지기에게 평생 창피를 줄만한 모습을 남겨 주려는 게 P의 복수였던 것이다.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나는 겨우 긴장을 풀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P는 잔뜩 웃음을 머금고 손수건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고, 옆에 있는 녀석들도 소리를 죽이며 웃고 있었다.

 

뭐, 어느 나라던 대학생이 생각하는 건 고작 이 정도 장난일테니.

 

[그에게 천벌을!]

 

 

 

P가 그렇게 외치자, 모두가 [천벌을!] 이라며 따라 외쳤다.

 

나도 말이지.

 

P는 그대로 손수건을 내려 문지기의 목에 대었다.

 

 

 

문지기는 [으노화!] 하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넘어졌다.

 

패닉에 빠진 것인지 그대로 물고기처럼 몸이 이리저리 튀어오른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우리는 다같이 웃어제꼈다.

 

한바탕 웃은 후, P는 문지기의 눈을 가린 천을 벗겨주려 했다.

 

하지만 문지기는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몸을 잔뜩 말았다 다시 쫙 펴는 등, 이상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걱정이 된 것인지, P가 문지기의 어깨를 잡은 순간.

 

[으제에에에에르르르르르우우우우!!!!] 하는 외침과 함께 문지기의 움직임이 멎었다.

 

 

 

입에서는 침과 거품이 줄줄 흘러내렸다.

 

단번에 지하실은 정적에 잠겼다.

 

누가 봐도 분명했다.

 

 

 

문지기는 죽어있었다.

 

아마 지나친 긴장 때문에 심장발작이라도 일어난 거겠지.

 

곧바로 응급처치를 했더라면 어떻게든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해야 스물서넛의 애송이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우뚝 서서 그를 바라봤을 뿐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이 사건이 대학에 발각되면 다들 퇴학당하겠지, 하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런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이 녀석 묻어버리자.]

 

정적을 깨고, P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않았다.

 

 

 

하지만 다들 P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우리 밖에 모른다.

 

모른 척 입다물고 있으면 문지기가 실종되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닌가.

 

 

 

마침 지하실은 땅을 파고 벽돌로 벽을 세운 것 뿐이라, 바닥은 흙바닥인 채였다.

 

벽돌이 무너진 벽 아래 구멍을 파고, 문지기를 뉘였다.

 

아직 죽고 시간이 그리 지나지 않았기에, 몸은 부드러웠다.

 

 

 

눈은 천으로 가린 채였다.

 

흙을 덮고, 그 위에 벽돌을 적당히 쌓아 그럴싸한 모양새로 만들었다.

 

지상으로 올라가자 방에 있던 녀석들이 몰려왔다.

 

 

 

그리고는 문지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궁금해했다.

 

P는 [문지기랑은 화해했어. 사정이 있어서 그 양반 한동안 기숙사에서 나가 있겠다고 하더라고.] 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다들 의심스러워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잔뜩 굳어있는 우리들을 보자 아무 말 않았다.

 

 

 

며칠 후, 대학에서도 문지기의 실종을 알아차렸고, 조사가 시작됐다.

 

경찰이 찾아와 기숙사 안을 조사하기도 했고, 학생들한테 탐문도 했지만 결국 문지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문지기는 행방불명 처리가 되었다고 들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사건이 처리가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경찰도 설마 지하실에 그가 묻혀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로부터 며칠 뒤, P가 귀국했다.

 

그때까지 나와 P는 이전처럼 사이좋은 룸메이트로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나 역시 평범하게 유학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심령현상이나 가위눌림 한 번 없이, 아주 평온한 유학생활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사건이다.

 

 

 

이제 와서는 그 문지기 사건은 내가 꿈을 꾼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 바로 요전날까지는 그랬다.

 

노후화가 심해진 기숙사를 해체했는데, 지하에서 백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전해듣기 전까지는 말이야.

 



출처: http://vkepitaph.tistory.com/989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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